•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신 하느님,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찬미받으소서. "

성물방 소식지

게시글 보기
제951호 - 연중 제20주일 / 23-8-20
입력일 : 2023.08.18 18:58:03
작성자 : 성물방 File : 23-08-03.jpg 조회 : 86
경기도 안성소재 미리내성지


2023년 8월 20일 일요일, 제951호 소식지입니다.




무더운 여름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8월 중순이 지났지만

아직도 한 낮은 기온은 35도 이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무더위와 함께

걱정되는 것이 우리 모두의 건강입니다.

약간의 운동과 편안한 마음가짐으로

건강한 여름을 지내야겠습니다.





[금주의 말씀묵상]


2023년 8월 20일 (일) [녹] 연중 제20주일

제1독서 이사 56,1.6-7 / 제2독서 로마 11,13-15.29-32 / 복음 마태 15,21-28

불공정하신 주님, 찬미받으소서!

조건 없이 우리에게 생명 주신 주님
믿음으로 공정과 정의 실천하며
누구에게나 베푸는 삶 살아가길

성경을 읽으면 늘 예언자들의 담대함에 가슴이 뜁니다. 감히 어느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말들을 쏟아내는 그 담력에 탄복합니다. 오직 주님의 뜻을 세상에 전하기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걸었다는 사실을 흠모합니다. 이런 예언자들의 모습이야말로 하느님의 살아계심을 확실히 증거하는 것이기에 그렇습니다.

인간은 모두 자유와 평화와 안위를 꿈꾸며 살아갑니다. 믿음인의 꿈에는 하나 더, 영혼 정화의 열망이 보태집니다. 하지만 삶의 많은 일은 늘 ‘느닷없이 불현듯’ 다가와 우리를 당혹스럽게 합니다. 그래서 세상살이가 ‘다사다난’으로 표현되는 것이겠지요. 지난 여름 장마는 길고 거세며 드셌습니다. 연일 들려오는 비보와 사고 소식은 우리를 헛헛하고 침울하게 만들었습니다. 나아가 이러한 재해가 비단 우리나라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또 얼마나 두려운 일인지요. 그럼에도 아니 그래서 더욱, 우리는 지혜로워져야 합니다. 무겁고 복잡한 마음을 주님의 자비심에 기대는 믿음으로 승화시켜야 합니다. 매일 매순간을 다만 찬미로 채움으로써, 앓는 세상에게 생명의 리듬을 선물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재해로 많은 것을 잃고 마음이 꺾인 이웃을 잊지 않고 살펴 도와야겠습니다.

그 때문일까요? 오늘 바오로 사도의 안타까운 호소가 마음에 사무칩니다. 하느님께 선택받은 백성인 이스라엘인들이 오히려 주님을 부인하고 등을 돌리는 현실이 아파서, 자신의 동족이 구원되기를 갈망하는 사도의 심정에 젖어들게 됩니다. 그러다 언뜻, 수천 년을 벼르고 별러서 마침내 인간을 구원하시려고 당신 아들을 제물로 삼으신 하느님의 심정이 오죽이나 쓰라렸을까 싶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듣는 복음이 찬물을 끼얹는 듯합니다. 예수님의 모습이 평소와 너무나 다르니 말입니다. 마귀에게 시달리며 고통을 당하는 딸에게 자비를 베풀어 치유해주기를 간청하는 모성을 완전히 무시하니 그렇습니다. 끊임없이 소리를 질러대는 것이 안쓰러웠던 제자들이 제발 “돌려보내십시오”라고 사정을 드려도 보는 둥 마는 둥, 듣는 둥 마는 둥 하시니 그렇습니다. 그 뿐인가요? 주님께로 다가와 엎드려 절을 하며 도움을 청하고 있는 그녀에게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좋지 않다”라고 쌀쌀맞게 응대하시니, 정말 모를 일입니다. 그런 모습을 지켜 본 제자들도 어안이 벙벙했을 것이고, 그러한 주님이 민망했을 법합니다. 더러는 얼마 전,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과 만나신 일을 떠올리며(마태 15,1 참조) 예수님도 ‘그들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 씁쓸히 등을 돌린 사람도 있었을 것만 같습니다.

물론 우리는 이 복음의 결말을 압니다. 그토록 원하던 딸의 치유는 물론이고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라며 칭찬을 해주셨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욱 예수님께서 이리 재고 저리 재듯, 시간을 끌었던 이유가 궁금해집니다. 그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오늘 1독서 말씀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이 오직 믿음이라는 사실을 전합니다. 믿음이란 공정을 지키고 정의를 실천하는 일을 통해서 드러나는 것임을 일깨웁니다. 공정이란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단어입니다. 세상은 언제나 공정을 외치고 정의를 꿈꾸니까요.

그런데 따져보면 하느님과 세상의 관계는 모든 것이 불공정하다는 걸 생각해 보셨는지요?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만드신 그때부터 내내, 온통 내어주고 또 내어주고 계시니 말입니다. 한결같이 세상의 모든 것을 모두에게 아무런 값없이 제공하고 계시니까요. 인간은 너나없이 모두가 주님의 것을 날름날름 받아 챙기며 생명을 유지하는 존재이니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제2독서 말씀은 그리스도인들이 살아내야 할 삶의 교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공정을 지키고 정의를 실천”하는 것, “주님을 섬기고 주님의 이름을 사랑하는 것” 오직 주님 종의 자세로 이웃을 섬기는 것….

그래서 주님께서는 오늘도 당신을 따르고자 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당신처럼 하느님의 뜻에 순명하라고 명하시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어떤 일에서나 손해를 감수하고 누구를 막론하고 먼저 베푸는 불공정을 살아갈 것을 요구하는 것이라 느낍니다. 다만 당신 닮은 삶을 살기 위해서 자신의 이익을 따지지 않고 손해를 계산하지 않으며, 무조건 내주고 퍼주는 삶을 살으라고 이르신 것이라 깨닫습니다.

주님께서는 오늘도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공정을 부르짖는 세상의 화답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당신의 자녀들, 그리스도인이 불공정 거래의 주역이 되기를 고대하십니다. 그래서 당신을 닮기 위해서는 미운 사람에게도 아낌없이 건네주라고 이르십니다. 신앙인에게는 미움이나 폭력, 교만 따위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는 뜻이라 새깁니다. 바오로 사도는 주님을 닮은 마음으로 동족을 사랑했기에, 자신보다 더 동족의 구원을 간절히 원할 수 있었습니다. 더 사랑하기 위해서는 원수에게도 몽땅 털어내어 주는 방법이 최고임을 배웁니다.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삶의 주제가 바뀌는 것이 믿음입니다.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삶의 목표가 달라지는 것이 믿음입니다. 우리 모두가 오로지 “몇 사람만이라도 구원”할 생각에 골몰하시는 그분을 사랑하기 때문에, 무조건 내어주고 퍼주는 불공정 거래인이 되면 좋겠습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가 이 땅에 하느님의 뜻을 이루어드리기 위해서 애쓰는 한 주간이 되시길 소원합니다.

장재봉 스테파노 신부 부산가톨릭대학교 신학원장 , 가톨릭신문



[한주간 전례]

2023년 8월 21일 (월) [백] 성 비오 10세 교황 기념일

비오 10세 교황은 1835년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한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1858년 사제품을 받은 그는 20년 가까이 본당 사목자로 활동하다가 만투아의 주교와 베네치아의 총대주교를 거쳐, 1903년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비오 10세 교황은 모든 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재정립하고자 노력하였다. 특히 교회법을 현대화하여 새 법전을 편찬하고, 성무일도서도 개정하였다.
그는 참된 그리스도인 생활을 해치며 교회를 위협하는 오류들에 맞서 싸웠으며, 1914년에 선종하였다. 1954년 비오 12세 교황은 비오 10세 교황을 시성하였다.

[복음묵상] 마태오 19,16-22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너의 재산을 팔아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오늘 복음은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 영원한 생명을 얻는 비결을 묻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자신의 힘만으로는 채울 수 없는 것이 있음을 아는 사람이 주님께 가까이 옵니다. 오늘 복음은 가진 것이 많지만 자기 생명이 영원하지 않음을 알고 이를 해결하고 싶은 어떤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하느님께 다가가 무엇을 청합니까? 오늘 복음의 어떤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청합니다. 올바른 이스라엘 사람은, 다시 말하여 올바른 신앙인은 필요한 온갖 것을 하느님께 선물로 받는다는 것을 압니다. “땅”(시편 135[134],12)과 ‘율법’(119[118],111 참조),

‘축복’과 ‘약속’(히브 6, 14-15 참조), 그리고 ‘하느님 나라’(마태 25,34 참조)를 받은 사람입니다. 무엇보다도 그와 우리는 하느님께 “생명”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 어느 것도 우리의 착한 행실의 대가가 아닙니다. 모든 것이 그분의 선물입니다. 그가 계명을 다 지켜 왔다고 하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오늘 복음의 어떤 사람은 이름이 없습니다. 이것은 그 “어떤 사람”이 바로 ‘우리 모두’라는 것을 표현하고자 복음사가가 고른 말입니다. 이상적인 신자는 하느님께서 주신 좋은 것을 형제들과 함께 나누는 사람입니다. 복음에서 부자 청년은 슬퍼하며 예수님을 떠나갔습니다. 예수님의 현존과 그분의 말씀이 효과를 내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자신에게 안락하고 안전한 삶을 보장하여 주는 재물을 포기할 수 없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부를 선택하는 대신 슬퍼하며 떠나간 사람, 그는 앞으로 더 슬프고 힘들 것입니다. 진정 우리를 부요하게 하시려는 예수님의 말씀 앞에서 우리의 마음가짐은 어떠합니까?
(정용진 요셉 신부)


2023년 8월 22일 (화) [백] 복되신 동정 마리아 모후 기념일

1900년 무렵부터 성모 마리아께 ‘여왕’의 영예가 주어져야 한다는 요청이 생겨났다. 1925년 연중 시기의 마지막 주일이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로 정해지면서 이러한 요청은 더욱 늘어났다. 이에 따라 1954년 비오 12세 교황은 마리아께서 여왕이심을 선언하고 해마다 5월 31일에 그 축일을 지내게 하였다.
그 뒤 로마 전례력의 개정에 따라, 마리아를 천상 영광에 연결시키고자 성모 승천 대축일 뒤로 옮겼으며, 축일 이름도 ‘복되신 동정 마리아 모후 기념일’로 하였다. 이날 교회는 성모 승천의 영광을 거듭 확인하며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서 우리를 위한 구원의 도구가 되신 것을 기린다.

[복음묵상] 마태오 19,23-30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

오늘 복음은 어제 복음에 이어 부의 위험성을 깊이 생각하라는 예수님 말씀을 전합니다. 부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는 이에게 언제나 큰 걸림돌이 됩니다. 돈은, 우리가 바라는 것을 거의 대부분 부가 가져다준다고 믿게 합니다. 부가 우리에게 좋은 것을 보장하고 그것이 실현되도록 결정적 도움을 주는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에 대한 가장 올바른 풀이는 ‘불가능성’입니다. 부자도 심지어 가난한 사람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가진 것이 많건 적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형제들에게 내놓기는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는 예수님을 따르려면 포기하여야 하는 일곱 가지 목록이 나옵니다(29절 참조). 거기에는 부모, 형제자매, 자녀, 곧 가족도 있습니다. 우리는 부모와 자녀,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서 많은 희생을 감수하며 살아갑니다. 이것은 분명히 옳고 좋은 일입니다. 그럼에도 이 모든 일도 궁극적으로는 주님을 향한 온전한 사랑 안에 자기 자리를 찾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최고의 가치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 앞에서 우리가 꼭 붙든 채 절대 포기하지 못하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봅시다. 좋은 것이 많지만 그 가운데 참으로 좋은 것은 주님의 말씀처럼 하나뿐입니다. “너에게 부족한 것이 하나 있다”(마르 10,21, 오늘 복음의 병행 구절). 그 하나를 얻고자, 영원한 생명을 선물로 받고자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그 좋은 것들 안에서 가장 좋은 것을 잃지 말고 삽시다.
(정용진 요셉 신부)


2023년 8월 23일 (수) [녹] 연중 제20주간 수요일

[복음묵상] 마태오 20,1-16
<내가 후하다고 해서 시기하는 것이오?>

하느님께서는 모든 이가 구원받고, 행복하며 기뻐하는 세상을 바라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보상이나 공로의 종교에 익숙합니다. 계명을 잘 지키는 이는 복을 받고, 그러지 않는 이는 벌을 받는다는 생각에 익숙합니다.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길은 그분의 계명을 철저하게 지키는 열심과, 그 과정에서 오는 많은 고난을 감수함으로써(“뙤약볕 아래에서 온종일 고생한”) 가능하다고 여깁니다. 과연 이것이 하느님의 의로움입니까?

오늘 복음은 하느님 방식의 의로움이 어떤 것인지 이야기하여 줍니다. 포도 수확철이 되면 대개 보름 안에 포도를 다 따야 해서 많은 일꾼이 필요합니다. 복음서에서 포도밭 주인은 이른 새벽부터 일찍 광장에 나가 일꾼을 모읍니다. 주인은 네 차례나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그들에게 합당한 대가를 약속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의 생각보다 훨씬 더 사람들의 안위를 걱정하십니다. 그런데 이른 아침부터 포도밭에 와서 일한 사람은, 자기처럼 많이 일한 사람은 많은 보상을 많이 받고 적게 일한 사람은 (자기보다 더) 적게 받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정말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먼저 일하며 수고한 우리는 한눈팔지 않고 인생의 모든 순간을 하느님의 계명에 따라 살았다고 자신할 수 있습니까? 이른바 ‘죄인들’ 또는 “맨 나중에 온 저자들”에 대하여 차마 말 못 하는 시기와 질투, 부러움을 안고 살지는 않습니까?

포도밭 주인의 정의를 따라가 봅시다. 하느님의 생각은 모든 이가 행복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정말 새로운 행복이고 참된 기쁨이라는 것을 깨닫는다면, 먼저 부름받은 우리가 먼저 행복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무척 기쁘고 감사할 것입니다. 이것은 밭에 묻힌 보물을 먼저 발견한 사람의 기쁨과도 같습니다. 적게 일하는 행복을 부러워하지 맙시다. 포도밭 주인처럼 부지런히 형제들을 찾아갑시다. 우리 주인의 방식으로 그들을 대합시다.
(정용진 요셉 신부)


2023년 8월 24일 (목) [홍] 성 바르톨로메오 사도 축일

바르톨로메오 사도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로, 갈릴래아 카나 출신이다. 필립보 사도가 인도하여 예수님의 제자가 된 나타나엘과 동일 인물로 여겨진다(요한 1,45-51 참조).
예수님께서는 그를 참된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칭찬하셨다.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요한 1,47). 교회의 전승에 따르면, 바르톨로메오 사도는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뒤 소아시아를 거쳐 인도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아르메니아에서 순교하였다고 한다.

[복음묵상] 요한 1,45-51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

필립보는 친구 나타나엘을 만나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기다려 온 메시아 예수님을 찾았다고 말합니다(45절; 신명 18,18-19 참조). 한평생 성경을 탐구한 나타나엘은 메시아가 변방의 작은 마을 나자렛 같은 곳에서 나실 수가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자 필립보는 그를 예수님과 만나도록 초대합니다. 필립보에게는 이미 예수님을 만나 자기 인생을 바꾼 자기 체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나타나엘은 “와서 보시오.” 하는 친구의 간결한 초대에 응합니다. 사람의 속마음까지 아시는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만나러 오는 나타나엘에게서 오랫동안 메시아를 찾고 만나고자 하였던 그의 순수하고 강한 바람을 알아보십니다.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 이스라엘이라는 말뜻에 대한 몇 가지 풀이 가운데 하나는 이스라엘을 “하느님을 보는 이”로 풀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참된 이스라엘 사람인 나타나엘은 그 말뜻처럼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다른 이름인 ‘야곱’이 인생을 바꾼 결정적 사건, 곧 그의 꿈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야곱의 꿈 이야기와 오늘 예수님의 말씀은 거의 같습니다. 다만 야곱이 본 “층계”(창세 28,12)가 예수님의 말씀 속에서 “사람의 아들”로 바뀌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사람이 하느님과 만나고 통하게 하시는 층계(사다리)라는 말씀입니다. 야곱의 말처럼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하느님의 집으로 이끄시는 하늘의 문이십니다(창세 28,17 참조). 나타나엘은 동료 필립보의 인도로 예수님과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 만남으로 인생이 바뀝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말씀처럼 그 안에 거짓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나타나엘처럼 거짓 없는 마음, 나누이지 않는 순수한 마음으로 예수님께 나아갑시다.
(정용진 요셉 신부)


2023년 8월 25일 (금) [녹] 연중 제20주간 금요일

[복음묵상] 마태오 22,34-40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율법의 바탕이 되는 십계명은 ‘-하여라.’는 계명과 ‘-하지 마라.’는 계명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대부분은 ‘-하지 마라.’는 계명입니다. 그 반면 ‘-하여라.’는 계명에는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켜라.”(탈출 20,8)와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여라.”(탈출 20,12)가 있습니다. 사실 이 두 계명은 십계명에서 가장 중요한 두 계명으로 알려져 있고 그래서 ‘-하지 마라.’가 아닌 ‘-하여라.’는 긍정형으로 끝납니다. ‘-을 하지 않기’만 하면 되는 계명보다 적극적으로 온 힘을 다하여 ‘-을 하기’가 훨씬 지키기 어렵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을 묻는 질문에 율법의 근본정신인 사랑을 말씀하십니다. 적극적으로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율법이 정하는 여러 계명을 잘 지켜 죄를 피하는 것에 만족하지 말고, 인생의 의미를 새롭고 더 높은 차원으로 인도하는 사랑에 전념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우리가 들은 제1독서의 말씀은 율법을 올바르게 지키는 것에 대하여 말합니다. 그것은 룻의 모범입니다. 기근이 들어 이방인이 살던 모압 지방으로 남편과 함께 이주한 나오미는 그곳을 떠돌며 두 아들을 낳고 살았는데, 결국에는 남편과 두 아들을 모두 잃고 두 며느리 오르파와 룻과 함께 남습니다. 오르파나 룻이 생계 문제로 자신의 친지와 친척들이 있는 모압인들에게 돌아가더라도 율법에 따른 죄를 짓는 것은 아닙니다. 오르파와 달리 룻은 시어머니 나오미 곁에 남기로 결심합니다. 룻은 자신도 과부이면서 연로한 과부 나오미의 남은 생을 염려하며 사랑으로 대하려는 것입니다. 룻은 법의 영역을 넘어 사랑으로 선택합니다. 중요한 것은 오직 사랑입니다. 사랑이 하느님과 우리의 연결 고리입니다. 계명들이 아니라 그 계명들의 근본정신인 사랑을 선택하고 지키며 살아갑시다.
(정용진 요셉 신부)


2023년 8월 26일 (토) [녹] 연중 제20주간 토요일

[복음묵상] 마태오 23,1-12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

참신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충실한 종교인이라고 자부하는 바리사이들의 위선과 거짓을 경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행실은 따라 하지 마라.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들으며 그 시대 바리사이들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 이를테면 부모들과 교육자들, 그리고 사제들의 모습이 어떠한지 생각할 수 있습니다. 말하거나 가르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모범을 보이는 생활이 중요합니다. 술 취하거나 태만한 부모, 품행이 바르지 않은 스승, 세상 것에 심취한 목자가 자기 자녀와 제자들 그리고 자기 양들에게, 정작 자신은 지키지 못하는 것을 지키도록 가르치며 스스로 거짓말쟁이가 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마태오 복음사가는 당시 교회 안에 있던 두 가지 교회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하나는 바리사이 같은 교회의 모습으로, 명예와 권력을 좇는 지도자들로 말미암아 겉은 화려하고 번지르르하지만 속은 텅 빈, 잘못된 권위주의와 형식주의에 매인 모습입니다. 다른 하나는 그리스도적인 교회의 모습으로 직무와 책임을 맡은 이들이 서로 친구요 형제로 대하며 말을 넘어 행동으로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지키는 공동체의 모습입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 교회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신 그분 자신을 삶의 지표로 삼아 다양한 역할과 책임을 맡은 이들이 겸손하게 형제들을 섬깁니다(20,26 참조). 부끄럽지만 우리 자신의 모습을 바라볼 용기를 냅시다. 우리를 위하여 한없이 자신을 낮추어 스스로 우리의 종이 되신 예수님의 겸손과 사랑을 기억하며 형제들에게 다가가 말뿐 아니라 행실로도 그들을 섬깁시다.
(정용진 요셉 신부)



[생활과 함께하는 교리]

교회 시대의 기도②
(「가톨릭교회 교리서」 2626~2649항)

제대로 기도하려면 하느님을 진정 아버지로 여겨야

교회는 기도의 형태로 찬미와 흠숭, 청원, 전구, 감사, 찬양 기도를 제시합니다. 대화에도 다양한 내용이 있듯이 기도에도 다양한 내용이 존재합니다. 기도할 때 이러한 기도의 형태들을 우리가 미리 정하고 한다기보다는 기도를 하다 보면 그러한 내용들이 나온다고 여겨야 합니다. 대화의 내용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정체성이 더 중요합니다. 내가 누구이고 상대가 누구인지 명확히 인지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말을 해주어도 버릇없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대화의 내용은 잘 정립된 관계라면 저절로 좋아집니다.

톨스토이가 길을 걷고 있는데 거지가 다가와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톨스토이는 주머니를 뒤져보았으나 가진 것이 없었습니다. 톨스토이는 그 거지를 바라보며 “형제여, 내게 지금 당신을 도울 수 있는 금전이 없으니 용서하시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 거지는 “고맙습니다. 당신이 나에게 ‘형제여’라고 불러준 것이 나에게는 금전을 준 것보다 더 기쁩니다”라며 눈물을 훔쳤습니다. 관계가 먼저이고 그 다음이 대화 내용이고 행동입니다.

마르틴 부버는 자신의 책 「나와 너」에서 인간 관계를 친밀성에 따라 세 단계로 구분하였습니다.

첫 번째가 ‘나와 그것’의 관계입니다. 이해타산적인 만남입니다. 상대를 이용해 내 목적을 이루기 위한 도구로 만나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청원기도와 감사기도를 해봐야 주님은 들어주시지 않으십니다. 주님을 금송아지처럼 만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음은 위 이야기의 톨스토이처럼 이웃을 형제로 바라보는 ‘나와 너’의 관계입니다. 하지만 하느님과 이러한 관계일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이 아니면 존재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나와 너’와의 관계가 완전해지려면 모든 이를 ‘형제’로 만들어 준 초월자 하느님을 전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초월자를 부버는 ‘영원한 너’라고 불렀습니다. 예수님은 그 영원한 너를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의 기도를 바칠 때 제일 중요한 단어는 그래서 “아버지!”일 수밖에 없습니다.

아버지는 자녀에게 선물을 줍니다. 이에 우리는 찬미기도를 드립니다. “찬미기도는 하느님 선물에 대한 인간의 응답입니다.”(2626)

마찬가지로 “흠숭은 창조주 앞에서 피조물임을 깨달은 인간이 취하는 기본 자세입니다.”(2628) 그리고 부모에게 아무것도 청하지 않는 자녀는 없습니다. “청원은 이미 아버지께로 돌아섬을 의미합니다.”(2629)

또한 부모로부터 사랑받는 자녀가 형제를 위해 아무것도 전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도 우리를 위해 전구해 주시고 성령님도 우리를 대신해 간구해 주십니다.(2634 참조) 부모에게 감사하지 않는 자녀는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바오로 사도도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입니다”(1테살 5,18)라고 말합니다.

감사가 깊어지면 찬양을 드립니다. 아이들은 부모에게 유치원에서 배운 노래와 율동을 보여줍니다. 이에 부모는 기뻐합니다. “찬양은 하느님께서 진정 하느님이심을 한결 더 직접적으로 인정하는 기도의 형태입니다.”(2639)

먼저 가슴으로 진정한 자녀로 기도하고 있는지 살핍시다. 그런데 내가 하느님을 진정 아버지로 여기는지는 나의 감정으로 알 수 있습니다. 마치 아기가 엄마 품에 안긴 것처럼 평화로운 마음이라면 무슨 말이든 하고 싶은 말을 하면 됩니다. 그러면 모든 말이 기도가 됩니다.

전삼용 노동자 요셉 신부(수원교구 조원동주교좌본당 주임) 가톨릭신문



[성물방 소식]

휴가기간 이후 많은 물량으로 인하여 파손 되는 사례가 있었습니다.
물론 저희와 택배회사에서도 많은 노력을 하고 있지만 그래도 고객님께 불편을 드렸습니다.
저희가 포장시 보완하고 택배회사와도 긴밀한 공조로 파손의 위험을 줄이는 노력을 기울리겠습니다.
고객님의 넓은 양해를 구합니다.




상호명:임마누엘/대표 송철영 라파엘, 사업자등록번호 : 206-17-24777, 통신판매업번호 : 하남 제0378호,
[12902] 경기도 하남시 미사강변한강로 135 미사강변 스카이폴리스 나동 415호
☎02-447-7396, 010-3161-4511

Copyright ⓒ 성물방 All Rights Reserved. Since 2004
성물방은 "www.smb.kr"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