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화의 하느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계실 것입니다."

성물방 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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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60호 -연중 제29주일·전교 주일 / 23-10-22
입력일 : 2023.10.20 18:54:26
작성자 : 성물방 File : 23-10-04.jpg 조회 : 156
건물 옥상에 본 가을 풍경

2023년 10월 22일 일요일, 제960호 소식지입니다.




요즘 파란 하늘이 가을이 무르익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도로가의 가로수가 점차 형형색상으로 물들고 있고

비가 온 뒤의 기온이 뚝 떨어집니다.

비록 외부의 날씨는 쌀쌀하지만

따뜻한 마음으로 이웃과 정을 나누어 봅니다.





[금주의 말씀묵상]


2023년 10월 22일 (일) [녹] 연중 제29주일·전교 주일

제1독서 이사 2,1-5 / 제2독서 로마 10,9-18 / 복음 마태 28,16-20

세상 끝날까지, 하느님은 우리를 지켜주십니다

지치고 힘든 삶의 무게 짓눌러와도
기도 안에서 무거운 짐 내려놓고
예수님 현존 체험할 때 큰 힘 얻어

기도 안에서 하느님과 함께

기도할 때 먼저 하느님 현존 안에 머물러 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하느님 현존 안에 머무는 것은 예수님 한 분만을 모시고, 나머지 다른 것들은 다 내려놓는 일일 겁니다. 예전에 선배 신부님에게 한 달 피정 기도 경험에 대해서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 이야기가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지게를 맨 사람이 있습니다. 그 지게 위에는 스펀지 하나가 놓여 있습니다. 그 스펀지는 길을 가면서 많은 것들을 빨아들입니다. 돈과 지식과 소유하고 싶은 물건을 빨아들입니다. 또 자식과 남의 일에 과도한 관심과 집착을 보이며, 그들의 짐을 빨아들입니다. 스펀지의 무게는 더해가고 그 무게는 점점 나를 힘들고 지치게 합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힘들어하는 사람의 짐을 가볍게 하는 방법을 알려주십니다. 바로 예수님을 지게에 지고 가는 방법입니다. 예수님이 그 스펀지 위에 올라서면, 내가 그동안 빨아들였던 계획이나 일이나 욕심의 물이 빠지고 지게는 가벼워집니다. 더 이상 삶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는 겁니다. 그렇게 예수님 한 분만을 모시고 나머지는 모두 내려놓을 수 있을 때 하느님 현존 안에서 기도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성체조배실에 들어갈 때나 성당에 들어갈 때 다른 짐들은 다 내려놓아야 합니다. 다른 계획들, 일들, 걱정거리들은 다 내려놓고 예수님하고만 그 자리와 시간에 함께하는 겁니다.

일상 안에서 하느님과 함께

예전에 ‘트랜스포머’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는데요. 어떤 자동차가 주인공과 나누는 대화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다른 로봇들은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말하는데, 그 로봇은 라디오에 나오는 노래나 말이나 광고 등을 써서 대답합니다. 신기했는데요. 그러한 일을 우리도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서 체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전에 시골 본당에 있을 때 제가 아는 청년들이 놀러 왔습니다. 같이 베란다에서 고기를 구워 먹는데, 문득 그 모습이 몇 달 전에 제가 부러워하던 모습이었음을 생각했습니다. 그 몇 달 전에 동기 신부가 청년 몇 명을 데리고 본당에 왔었습니다. 잔잔한 노래를 틀어 놓고, 조용하고 한적한 분위기에서 달빛을 보며 술을 한잔 했는데요. 분위기가 참 좋았습니다. 마음속으로 ‘나도 진작 이런 걸 할 걸’ 하고 생각했습니다.

몇 달 후에 제가 아는 청년들이 놀러 와서 비슷한 분위기에서 고기를 먹고 있는 내 모습을 본 겁니다. 그 순간 하늘을 올려다보며 생각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내 작은 바람까지 놓치지 않고 담아 두셨다가 보여주시는구나.’ 그렇게 주님의 현존을 아주 가까이 느꼈던 적이 있는데요.

요한복음 마지막에도 보면 비슷한 모습이 있습니다. 고기 잡는 제자들이 일하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곁에 계셨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고기를 잡지 못하는 제자들에게 배 오른쪽에 그물을 던지라고 하셨고, 많은 고기를 잡게 해 주십니다. 그렇게 선물을 체험했을 때 제자들은 그분이 주님이심을 알아봅니다. 현존을 알아차리게 됩니다.

그렇게 일상을 주의 깊게 들여다보면, 말씀하시고 함께하시는 주님을 더 깊이 체험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 함께하시는 주님을 깊이 알아보며 일상을 살아가 보시면 좋겠습니다.

보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동기들이 군종신부가 있는 곳에 가서 반 모임을 한 적이 있었는데, 외국에서 사목하는 친구도 함께 있었습니다. 그런데 외국에서 살아가는 것이 쉽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힘들어 보일 때가 종종 있었는데요. 그날 한 친구가 텔레비전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우연히 가톨릭평화방송에서 멈추었습니다. 다른 때면 그냥 넘길 수도 있는데, 교구 주교님이 나와서 잠깐 멈추더군요.

주교님이 선교하시는 분들을 대상으로 강의하고 계셨는데요. 마침 그 순간에 대략 이런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선교사들이 타지에서 힘들고 외롭고 지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예수님의 현존에서 위로를 느껴야 합니다. 어디서 그 현존하심을 체험할 수 있습니까? 미사 안에서 성체의 모습으로 다가오시는 그분을 가까이서 만나고 체험할 수 있습니다.” 왠지 그 이야기가 외국에서 사목하고 있는 동기 신부에게 누군가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처럼 느껴져서 신기했던 적이 있습니다.

동기 신부뿐만 아니라 복음을 전하고 있는 누구에게나 주님의 현존은 큰 힘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예수회 송봉모(토마스) 신부님의 「예수-우리의 발걸음을 아빠 하느님께로」에 아프리카의 복음화를 위해 일생을 바친 리빙스턴도 최고의 복을 누린 사람이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리빙스턴은 식인종들과 짐승들이 득실거리고 전염병이 창궐하는 아프리카 오지에서 죽을 고비를 수도 없이 넘겼고 그의 오른팔은 사자의 공격으로 불구가 됐습니다. 검은 대륙 아프리카에서 젊음을 바쳐 선교와 탐험을 한 리빙스턴에게 영국 왕립지리학회에서 영예로운 상을 주고자 불렀을 때 그 자리에서 기자들이 그에게 어떻게 아프리카 오지에서 견딜 수 있었는지 물었습니다. 그러자 리빙스턴은 “제가 선교에 투신할 수 있었던 비결은 마태오복음서 맨 마지막에 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보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20)리빙스턴은 이 말씀을 평생 가슴에 품고 살았던 것입니다. 그는 진정 ‘너는 늘 나와 함께 있단다’라는 하느님의 말씀을 믿고 삶으로 증명한 복된 사람이었습니다. 우리와 끝까지 함께하시겠다는 주님의 현존을 삶 안에서 체험하고 힘을 얻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김기현 요한 세례자 신부 인천가톨릭대학교 영성지도 담당 , 가톨릭신문



[한주간 전례]

2023년 10월 23일 (월) [녹] 연중 제28주간 월요일

[복음묵상] 루카 12,13-21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

오늘 복음은 지난 토요일 복음에 이어지는 부분입니다. 예수님께서 군중 가운데 있던 제자들을 가르치셨는데, 군중 속 어떤 사람의 등장과 질문으로 예수님의 말씀이 끊깁니다. 그는 예수님께 형제 사이에서 벌어진 유산 다툼의 중재를 요청합니다. 이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과 가르침은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유산을 두고 벌어진 형제간 다툼을 바라보시는 예수님의 입장은 명확하시고 단호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탐욕을 경계하도록 당부하십니다. 탐욕은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이 가지려는 욕심입니다. 욕심이 많은 사람은 재물의 축적이 사람의 생명까지도 보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람의 생명은 재산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사람의 생명보다 더 귀한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탐욕은 어리석음으로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이어지는 비유는 탐욕을 경계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설명합니다. 이 비유에서 부유한 농부는 하느님과 대조를 이룹니다. 어떤 농부는 많은 소출을 거두었고, 많은 곡식과 재물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는 하느님의 눈에 어리석은 사람이었습니다. 재물을 지나치게 축적하려는 욕심을 가졌다는 이유보다는, 자신을 위해서 재물을 축적하였을 뿐 다른 사람을 위하여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어리석은 부자가 맞이하게 될 마지막은 죽음입니다.

오늘 복음은 하느님 앞에서 부유한 사람이 되는 방법을 알려 줍니다. 자기 자신을 위하여 재화를 축적하기보다 축적한 재화를 다른 사람을 위하여 사용하는 것입니다. 하느님 앞에서 부유하지 못한,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도록 우리 각자 결심을 다져 봅시다.
(정진만 안젤로 신부)


2023년 10월 24일 (화) [녹] 연중 제29주간 화요일

[복음묵상] 루카 12,35-38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

제자들을 위한 예수님의 가르침은 오늘도 이어집니다. 오늘 복음의 주제는 ‘준비’와 ‘깨어 있음’입니다. 이야기 상황에 대한 묘사나 제자들의 질문과 같은 도입 문단 없이 예수님의 가르침이 바로 시작됩니다.

“너희는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있어라.” 가르침을 시작하는 이 말씀은 ‘띠’와 ‘등불’로 오늘 복음의 주제를 요약하여 전달하고 있습니다. 먼저 ‘허리에 띠를 매다.’는 표현은 신속하게 출발할 수 있도록 철저히 준비하라는 의미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발목까지 내려오는 긴 겉옷을 입었고, 편안한 활동을 위해서 허리띠로 길이를 조절하였습니다. 두 번째 은유적 표현인 ‘등불을 켜다.’는 ‘깨어 있음’을 의미합니다(탈출 27,20; 레위 24,2도 참조).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두 은유적 표현을 사용하시어, 제자들에게 준비하고 깨어 있으라고 권고하십니다. 제자들도 주인이 자리를 비웠을 때 임무를 수행하여야 하는 종들과 같은 상황에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주인은 자신이 돌아왔을 때 종들이 깨어 있는 것을 발견하면 그들에게 상을 내릴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깨어 있는 종의 모습은 모든 이가 본받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종의 비유로써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 곧 우리 모두 깨어 있는 종이 되도록 요구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보실 때에 깨어 있는 종들은 행복합니다.
(정진만 안젤로 신부)


2023년 10월 25일 (수) [녹] 연중 제29주간 수요일

[복음묵상] 루카 12,39-48
<많이 주신 사람에게는 많이 요구하신다.>

오늘 복음은 어제 복음에 이어서 ‘준비’와 ‘깨어 있음’이라는 동일한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 주제를 이어 가려고 마태오 복음서 저자는 ‘도둑’의 비유와 함께 ‘집사’의 비유를 소개합니다.

어제 복음에서 오실 분은 주인이었지만, 오늘 복음에서는 그 대상이 바뀝니다. 예수님께서는 예상하지 못한 때 도둑이 들어오듯이, 사람의 아들도 이처럼 오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진술에서 미래의 사건을 예상하지 못하는 인간의 무능력함이 강조됩니다. 이는 제자들이 깨어 준비하면서 사람의 아들의 오심을 기다려야 하는 이유가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질문에 응답하시는 방식으로 가르침을 이어 가십니다. 어제 복음에서 주인을 기다리는 종이 예시되었다면, 오늘 복음에서는 충실하고 슬기로운 집사가 비유적으로 제시됩니다. 주인이 집사에게 맡긴 임무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주인의 가정을 돌보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주인의 재산을 관리하는 것입니다. 주인은 집사에게 자신이 올 때를 기다리면서 맡겨진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리라 기대합니다.

그러나 만일 집사가, 주인이 늦게 온다는 사실을 알고 방만한 생활을 한다면, 그는 주인에게 처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복음의 두 번째 비유, 곧 집사의 비유에서 집사의 불충실한 모습이 상세하게 소개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집사의 부정적 측면을 강조하시면서 제자들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전달하십니다. 제자들을 향한 경고는 자칫 나태하고 방만한 생활에 빠져 있을 수 있는 우리를 일깨우고 있습니다.
(정진만 안젤로 신부)


2023년 10월 26일 (목) [녹] 연중 제29주간 목요일

[복음묵상] 루카 12,49-53
<나는 평화를 주러 온 것이 아니라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오늘 복음은 앞서 24일과 25일의 복음에서(12,35-48 참조) 준비되었습니다. 주인, 사람의 아들, 도둑과 같은 설정은 예수님께서 당신의 파견 목적을 설명하시는 바탕이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파견되신 목적을 두 가지로 설명하십니다. 첫 번째, 예수님께서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오셨습니다. 불은 구약 성경에서 정화(레위 13,52; 민수 31,23 참조), 구분이나 분별(예레 23,29; 이사 22,14 참조), 또는 심판의 수단을(창세 19,24; 탈출 9,24; 이사 43,2 참조) 가리키는 말로 쓰였습니다. 여기에서는 ‘심판’의 수단으로 쓰였는데, 예수님께서는 이를 통하여 심판자의 역할을 은유적으로 표현하십니다.

두 번째, 예수님께서는 세상에 분열을 일으키러 오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예수님께 기대하였던 역할과 차이를 보입니다. 루카 복음의 탄생 이야기는 예수님을 이 세상에 태어나신 평화의 주님으로 묘사하고 있으며(1,79; 2,14 참조),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파견하시면서 방문하는 집에 평화를 빌어 주라고 명령하셨습니다(10,5-6 참조). 그러나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평화가 아닌 분열을 일으키시는 분으로 당신을 소개하십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역할은 시메온 예언자의 예언으로 예고되었습니다(2,34-35 참조). 시메온의 예언에 따라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이도 있지만 반대하는 자도 나오게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누구이신지, 그리고 이 세상에 왜 오셨는지 배웁니다. 예수님의 자기 소개는 우리를 향한 초대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의 자세를 성찰하는 기회를 주기 때문입니다.
(정진만 안젤로 신부)


2023년 10월 27일 (금) [녹] 연중 제29주간 금요일

[복음묵상] 루카 12,54-59
<너희는 땅과 하늘의 징조는 풀이할 줄 알면서 이 시대는 어찌하여 풀이할 줄 모르느냐?>

예수님의 시선은 제자들에서 군중에게로 옮겨 갑니다. 오늘 복음은 경고하는 내용의 두 개 본문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첫 번째 본문(12,54-56)에서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비판하십니다. 팔레스티나 지역의 기후를 보면, 서풍이 지중해에서 내륙으로 습기를 끌어오고 남풍이 네겝 사막에서 열기를 가지고 옵니다.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두고 이러한 팔레스티나 지역의 자연 현상은 이해하면서 이 시대의 표징은 알아보지 못하는 문제를 지적하십니다. 군중은 예수님에게서 ‘위선자’라고 비판받는데, 이는 군중이 하느님의 뜻을 근본적으로 잘못 이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기후 현상을 예시하시며 구체적 실천을 요청하십니다. 이에 따라 군중은 그들 앞에 나타난 시대의 표징을 식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두 번째 본문(12,57-59)에서 예수님께서는 군중에게 반대자와 화해할 것을 권고하십니다. 그러지 않으면 감옥에 넘겨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는 채무자가 빚을 갚지 못하면 재산을 모두 팔아서 채무를 해결할 때까지 감옥에 있어야 하는 당시의 규정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12장 59절에서 언급된 ‘한 닢’은 1세기 팔레스티나 지방에서 통용된 화폐 가운데 가장 가치가 낮은 동전입니다(21,2 참조). 이로써 예수님께서는 엄격한 법 규정과 재빠른 실천을 강조하십니다.

오늘 우리는 군중 속에 들어가 예수님의 말씀을 경청하도록 초대받습니다. 복음에서 군중에게 건네시는 예수님의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 건네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날카롭습니다. 그 날카로움은 우리의 아픈 곳을 찌르지만, 또한 상처도 치유하여 줍니다.
(정진만 안젤로 신부)


2023년 10월 28일 (토) [홍] 성 시몬과 성 유다(타대오) 사도 축일

시몬 성인과 유다 성인은 열두 사도의 일원이다.
시몬 사도는 카나 출신으로 열혈당원이었다가 제자로 부름받았으며, 주로 페르시아 지역에서 선교한 것으로 전해진다.
유다 사도는 예수님을 팔아넘긴 유다 이스카리옷과 구별하여 ‘타대오’라고 불리며, 유다 지역에서 선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두 사도는 예수님의 친척일 수도 있다. 예수님의 형제로 언급되는 복음 구절에 같은 이름이 나오기 때문이다. “저 사람은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 그의 어머니는 마리아라고 하지 않나? 그리고 그의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가 아닌가?”(마태 13,55)

[복음묵상] 루카 6,12-19
<예수님께서는 제자들 가운데에서 열둘을 뽑아 사도라고 부르셨다.>

루카 복음서 저자는 마태오 복음서와(10,1-4 참조) 마르코 복음서와(3,13-19 참조) 함께 열두 제자의 이름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오늘 교회가 기억하는 시몬과 유다의 이름도 이 명단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한 명은 ‘열혈당원이라고 불리는 시몬’이고, 다른 한 명은 ‘야고보의 아들 유다’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여러 제자들 가운데 열둘을 뽑으셨고, 그들을 ‘사도’라고 부르셨습니다. 여기에서 열두 제자는 사도와 동일시되고 있습니다. 사도는 ‘보냄 또는 파견을 받은 이’로서 파견하는 이에게 종속됩니다. 파견하는 사람 없이 파견되는 사람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도는 주님께서 부여하시는 권한으로 사명을 수행할 수 있을 뿐입니다. 사도의 역할에 대한 구체적 언급은 루카 복음 9장 1-2절에서 드러납니다.

루카 복음 전승에서 주목할 만한 특징을 한 가지 꼽는다면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셨다는 묘사입니다. 루카 복음서 저자는 기도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6장 12절에서 소개하면서 사도의 선발이 하느님의 뜻에 순종한 결과임을 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뜻에 온전히 일치하시어 당신의 협조자를 선택하셨습니다. 기도의 두 번째 결과는 예수님의 선교 활동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 바치는 기도를 통하여 하느님과의 관계를 명확하게 세우시고 활동을 위한 힘을 얻으셨습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기도와 활동이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 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도를 선택하시고, 그들에게 선교의 모범을 보여 주셨습니다. 하느님께 바치는 기도는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모든 활동의 ‘배경’이 됩니다.
(정진만 안젤로 신부)



[생활과 함께하는 교리]

기도의 싸움①
(「가톨릭교회 교리서」 2725~2733항)

기도는 자기와의 싸움

기도하다가 포기하게 되는 가장 큰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기도가 힘들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포기를 선택하는 이유는 기도가 ‘싸움’임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많은 경우 기도가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을 하는 것처럼 즉각적인 만족감을 준다고 착각합니다. 그러나 기도는 전쟁입니다. 전쟁은 고통이고 평화는 전쟁이 끝난 후에 옵니다. “기도란 일종의 싸움”이고 그 대상은 “우리 자신”과 “유혹자의 계략”(2757)입니다. 전쟁 중에는 승리하기 위해 싸우는 노고만 있을 뿐입니다.

탈출기를 보면 이스라엘 백성의 기도는 모세를 구원자로 만난 다음에 시작되었습니다. 파라오와 맞서기 시작하였고 광야로 나와서는 파라오에게 돌아가고 싶은 마음과 싸워야 했습니다. 그들은 쓰러져도 장대에 달린 구리 뱀을 보며 다시 일어나곤 했는데, 이 과정이 기도입니다. 기도는 결국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처럼 자기 자신을 매다는 일과 같습니다.

김미경 강사가 거의 4년 만에 tvN ‘어쩌다 어른’에 출연해 강연하였습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한때 직원이 20명 정도 되고 연 수입이 10억 원 정도로 누가 봐도 성공한 유명 인사가 되었던 그녀는 논문 표절이 밝혀지며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졌습니다. 그러자 아무도 그녀를 찾아주지 않았습니다. 삶을 끝내고 싶을 정도로 힘이 들었습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무작정 걷는 일이었습니다. 몇 달을 그렇게 했습니다. 운동은 자기를 괴롭히는 일입니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기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꽤 시간이 흐른 뒤 이런 생각과 마주칩니다.

“강의 안 하면 어때, 미경아! 넌 왜 ‘너 자신’보다 ‘네 꿈’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니?”

자기 꿈과 생각을 끊으니 들리는 음성이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하나가 아니라 둘’이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하나는 ‘숨만 쉬고 있어도 행복한 나’이고, 또 다른 하나는 그러지 말고 ‘꿈을 좇으라고 채찍질하는 나’입니다. 이 ‘꿈을 좇으라는 나’가 나의 거짓 주인인 ‘자아’입니다. 기도로 자아를 십자가 제단을 통해 온전한 제물로 봉헌하면 다시 살 힘이 생깁니다. 이 일이 있고 난 뒤 김미경 강사는 새 행복을 알았고 새로운 힘을 얻었습니다.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길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자아 포기와 영적 싸움 없이는 성덕도 있을 수 없다”(2015)라고 가르칩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으니 우리가 자신을 버리면 버릴수록 우리는 더욱 성령의 지도를 따라서 살아가게 됩니다.”(736) 그래서 자기를 십자가에 매다는 기도를 멈추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죽으려는 마음보다 살려는 마음이 클 때 기도가 멈춥니다. 절제되지 않는 생존 욕구들을 기도를 통해 이겨야 합니다. 우선 “마음은 간절하나 몸이 따르지 못한다”(마태 26,41)라고 하실 때 육체의 욕망이 있습니다.(2733 참조) 그리고 “소유욕과 지배욕에 맞서 싸우는 것”(2730)도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광야에서 40일 동안 육체의 욕망과 소유욕, 그리고 지배욕을 이겨내셨습니다. 그러자 천사가 와서 시중들었습니다.

부활을 믿으면 기도 중의 십자가를 견뎌낼 수 있습니다. 기도가 자기와의 싸움이기에 기도는 그 본질상 매우 괴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부활이 약속된 죽음이기 때문에 기도의 고통은 감미로운 고통입니다. 걸음마 하기를 멈춘 아기는 인간이 되기를 포기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기도를 포기한 사람도 하느님처럼 되어가는 과정을 포기한 것입니다.

전삼용 노동자 요셉 신부 수원교구 조원동주교좌본당 주임 가톨릭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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